한국교회는 세계선교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짧은 기간에 급성장을 기록한 교회이다. 이러한 급성장의 배경에는 사회적, 역사적 배경도 있지만, 초기 내한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선교사역과 그들의 희생에 힘입은 바가 큰 것이었다. 이들은 가난과 기근, 온갖 질병과 불결한 위생환경이 넘쳐났던 조선에 들어와 자기 자신과 따로는 사랑하는 가족의 희생을 담보하며 한국인들의 영혼 구원과 문명개화에 자신의 전생을 바쳤다. 땅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 부르심에 순종하여 부모와 친척, 고향을 떠나 이억만리 조선에 들어와 고귀한 희생의 피와 댓가를 지불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희생 속에 한국인들은 가난과 무지와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영혼구원과 민족적 구원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한국사회와 교회는 이러한 선교사들의 희생과 업적을 애써 무시하거나 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한국인 근대화하는 과정에 기독교가 특히 선교사들이 일군 업적에 대해 평가절하하거나 애써 외면하는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최근 일부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행태를 일반화하여 기독교 전체를 모독하거나 비난하는 일들이 무수히 많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도 세속화의 큰 흐름에 휩쓸려 사회적 소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값비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은혜를 값싼 복음으로, 값싼 은혜로 대체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소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한국복음화의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내한했던 초기 선교사들의 신앙과 사랑의 정신이 어느 때 보다 요청되는 시기이다. 그러므로 초기 내한 선교사들의 사역을 통해 오늘 한국교회는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로는 초기 내한 선교사들은 신학적으로 ‘보수적 복음주의 신앙’의 소유자들이었다. 이들은 종교윤리 차원에서 우상숭배 거부와 미신철폐와, 조상제사 거부, 안식일 준수와 같은 성경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들을 가르쳤다. 선교사들의 신학적 보수성은 한국인들을 교회에 받아들이는데 매우 높은 신앙적 기준을 적용하였다. 그들은 한국인들에게 세례를 주고, 교회의 정회원으로 받아들이는데 매우 신중하였다. 이러한 내한 선교사들의 교회 입회 기준에 비하면 최근 한국교회는 너무 쉽게 교인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교회성장주의에 매몰되어 신앙의 검증없이 세례를 주거나 교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지향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초기 내한선교사들은 교파를 초월하여 경건주의 색채가 강했다. 경건주의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한 중생의 체험과 기도와 성경공부를 중심으로 한 훈련, 성경윤리를 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지침으로 삼고, 성경이 금하는 사회악을 단호하게 금지하였다. 이러한 경건주의 신앙은 후에 사회개혁적 신앙으로 발전하였다. 오늘날과 같이 세속화된 사회 속에서 교회가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비기독교인들과 윤리적으로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개인의 영성을 함양하고 기독교인의 사회적 영향력의 재고를 위해 초기 내한 선교사들이 지녔던 경건주의적 신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요한 기독교인의 덕목일 것이다.
셋째로 초기 내한선교사들은 철저한 성경중심의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내한 초부터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광범위한 보급하여 그 결과로 국문해독운동이 일어날 정도였다. 사경회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성경공부는 교회성장과 부흥의 든든한 기초로 작용하였다. 이 때문에 한국기독교를 “성경의 기독교‘(Bible Christianity)라고 부르고, 한국 기독교인들을 ’성경을 사랑하는 크리스천‘(Bible loving Christian)이라고 불렸다. 이는 한국 기독교가 사회, 민족운동으로 나아가는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한국교회 갱신과 부흥은 기초는 성경이다. 기독교의 사회적 신뢰도의 향상과 팬데믹 이후 예배공동체의 복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선교 초기 내한선교사들과 한국인들이 사랑했던 성경적 기독교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